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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교원
고향길
글 창원고등학교 교사 이유종
집이 부산이라 창원에 있는 학교까지 사십여 킬로미터를 매일 자가용을 타고 줄넘기 넘듯이
헉헉거리며 왕복했는데 최근에 자가용을 버리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결심을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로 창원까지 오십 분을 간다. 버스에 내려서 다시
사십 분을 걸어서 출근한다. 자가용으로 사십 분이면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
려서 하는 이유는 돈을 아끼자는 경제적 측면이나 자연을 보호하자는 거창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
라 그냥 걸어보자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십 리를 걸어서 등하교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폭설이 내린 아침은 죽기보다 걷기 싫었던 그 길. 먼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밥을 하던 어머
니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별다른 반찬도 없이 간장에 밥 비벼먹고 나섰던 새벽길. 나이가 들어서
그런 탓인지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은 자취를 감추고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
출근길은 무엇보다 걷는 시간이 너무 좋다. 가능하면 아스팔트를 피해서 산을 끼고 도시 변두
리 텃밭 사이로 난 길을 느리게 걷다보면 차를 타고 쉭 지나가면 절대 볼 수 없었을 풍경을 보게
된다. 진달래가 새초롬히 피었다 질 때쯤이면, 수천 마리 샛노란 벌떼로 피어난 개나리의 아찔한
향연에 참가하게 되고 가지 위쪽부터 개나리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햇볕 잘 받는 곳에 선 벚
나무부터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계절마다 순환하며 항구의 앞바다를 수놓았을 물고기떼
처럼 꽃들이 시간의 질서에 순응하며 산야를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 번은 보도블록을 밟으며 걷다 어린 참새의 시체를 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죽은 새를 한
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어린 새는 어쩌다 생명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이른 봄에 죽음을 맞이
했을까. 비정한 도시의 삶이 싫어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버린 것일까. 온갖 상념이 삶과 죽음을 넘
나들며 소용돌이친다. 그때 마침 청소부 아저씨가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봉투에 담으며 맞은편에
서 걸어오고 있다. 문득 이 새도 쓰레기로 봉투에 담기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어린 새의 죽음은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했다.
자가용을 버리고 걷다가 만나게 된 소소한 깨달음들, 자연의 향기, 사람의 향기를 느끼면서 걷는
기쁨들. 이 모든 것들이 고향에서 걸었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시골도 도시화되어 집집마다
자가용이나 오토바이가 있어서 옛날만큼 잘 걷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도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란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걸어보는 것, 그것이 고향길을 걷는 것이다. 그때 자연은 고향이 되고, 사람도 고향이 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무작정 도시를 걷고 싶다. 수천 마리 하얀 벌떼처럼 함박눈이 내렸
으면 좋겠다. 도시가 품고 있는 자연, 그 안에서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느
끼게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고향길을 걸었던 추억이 필요하다. 아이에게는 이 도시가 고향이 아니
겠는가.
38 2015 장학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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